하늘비전교회 원로 오관석 목사 소개합니다.
오관석 목사의 부흥집회
1958년 늦가을에 충남 계룡산 입구 양정고개 기도원에서 큰 은혜를 받고 하산하여, 내가 시무하고 있는 태성침례교회에서 3개월 동안 직접 집회를 인도하여 오순절의 역사가 일어남으로, 30여 명 교인이 석 달 만에 300여 명 교인으로 부흥하는 역사가 있었고, 전교인이 십일조를 드리고 주일을 성수하는 놀라운 영적 교회로 탈바꿈하였다.
이 일로 많은 교회에서 부흥집회에 나를 강사로 초청해 왔는데, 처음 간 곳에 반곡침례교회였다. 이때 교호 안에서는 예배를 드리고, 교회 밖 동네 사람들은 농 악기를 가지고 장구 가지고 장구, 북, 꽹과리를 치며 돌고, 예배당 안에서는 방언, 예안, 통변의 은사를 받고 통회하는 역사가 일어나는 웃지 못할 사태가 벌어졌다.
그때 은혜를 받은 성들이 금방 얼음을 깨고 침례를 받는 일도 있었다. 계속 되는 집회에 이 교회 저 교회의 작은 일들이 많이 있었으니 특별히 기억나는 교회가 있어 소개한다.
노영식 목사님이 시무하고 있던 공주침례교회에서 있었던 일이다. 다니엘 목사님이 제작한 100평 되는 천막을 치고 집회를 하는 중에 공주 장날이 되었다.
낮 공부를 하는 중 1시쯤 되었을 때에 밖에서 “불이야 불이야” 하는 소리가 들렸다. 시장 거리에서 보니 교회 마당 천막에 불이 불어 타고 있어서 불을 끄려고 쫓아와 보니, 헛것을 본 것처럼 불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그때 교회 안에는 말씀을 마치고 손을 수백 명의 교인들이 통성으로 기도하고 있었다.
이강산 목사님이 운영하던 성거산기도원에서 집회할 때 일이다. 20세 쯤 되어 보이는 청년은 앞을 보지 못하는 맹인이었다. 저녁집회를 마치고 숙소 로 들어오는데 “목사님, 목사님” 하면서 뒤따라오는 사람이 있었다. 어머니인지 누구인지 모르나 나이 지긋한 부인이 맹인을 데리고 내 앞에 서서, 앞을 보지 못하는 맹인인데 한번만 기도를 받으면 볼 것 같은 확신이 있어서 백 리 밖에서 왔다는 것이다.
그 맹인은 내 집회에 참석한 어떤 부인에게 자신의 밖으로 튀어나온 치질이 나았다고 하는 말을 듣고, 자신도 목사님을 만나면 나을 거리는 믿음으로 찾아왔으니 기도해 달라고 하였다.
집회를 마치고 들어가는 길이라 나의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빨리 옷을 벗어야 되겠기에 급하게 손을 얹어 “네 믿음대로 예수의 이름으로 볼지어다” 하고 세 번 크게 소리를 질러 기도한 후 돌려보냈다.
그 이튿날 낮 공부 시간에 그 청년이 다시 찾아와서 눈이 보인다는 간증을 하고 미친 사람처럼 펄펄 뛰는 것이었다. 나는 내 손을 한참이나 바라보며 “하나님, 이 손을 써주셨구만요”라고 혼자 고백했다.
몇 년도 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인천 용인감리교회에서 있었던 일이다. 지금부터 거슬러 올라가면 까마득한 옛날 같기만 하다.
의자가 없는 마룻바닥 강단 옆 기도실에 열일곱 살 먹은 앉은뱅이를 데리고 와서 교회에서 밥을 지어 먹으면서 부흥회에 참석하는 어머니가 있었다. 앉은뱅이 아들을 이끌고 강단 제일 앞에 앉은 어머니는 뜨거운 눈물을 시간마다 쏟고 어머니의 두 손을 앉은뱅이의 양쪽 무릎을 붙들고 은혜를 받는 것이었다.
집회 끝날 금요일 저녁에 전 교인들을 안수해 주었다. 그때 그 앉은뱅이가 일어나서 어머니와 더불어 춤을 추며 뛰어 다녔다. 교회 안은 온통 흥분의 도가니에 휩싸였다. 나는 일주일 동안 울며 무릎을 붙들고 흔들던 어머니의 기도의 응답이라고 생각했다.
전라남도 강진에서 조금 떨어진 송학이라고 하는 동네에 교회가 있었다. 그 교회 전도사는 천 전도사였다. 하루는 울면서 이런 얘기를 했다. “훌륭한 목사님이 오셨으니 집회에 참석해 주십시오” 라며 집집마다 말씀을 드렸더니 동네사람들 하는 말이 “그렇게 훌륭한 목사님이 오셨으면 전도사님의 앉은뱅이 형님이나 걷게 해달라고 하십시오” 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가족 중에 불구자가 있는 사람은 목회를 못하겠다는 것이었다.
교인이 몇 안 되는 교회에서 몇 시간 집회를 했지만 앉은뱅이는 볼 수 없었다. 그래서 전도사님에게 앉은뱅이 형님이 어디 있느냐고 물었더니 골방에 있다는 것이다. 왜 집회장소에 나와서 은혜 받게 하지 않고 골방에 놔뒀느냐고 했더니, 교인들에게 덕이 안 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오늘 저녁부터 당장 강단 앞에 나와 앉게 하라고 말했다.
눈은 쏙 들어가고 뼈만 앙상히 남은 환자 한 사람이 강단 앞에 나와 앉았다.
말씀을 듣는 어간에 하염없이 울고 있는 전도사 형님이 너무 측은해 보였다. 설교를 마치고 통성기도 시간에 내려가서 무릎을 붙들고 기도해 주었는데 두 무릎이 몽우리져 있었다.
세 번째 기도하는 낮 시간에는 그 천씨가 기도를 안 받겠다는 것이다. 왜 기도를 안 받으려고 하느냐고 했더니 감사 예물을 바치고 기도를 받겠다고 잠깐 기다려 달라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바지를 울리고 무릎 밑에서 구겨진 돈들을 하나씩 하나씩 내놓았다. 그때 나는 ‘돈 두는 곳도 참 종류가 많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돈을 차곡차곡 간추려서 봉투를 못했다고 하면서 내 손에 들려주는데 그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내 심정이 찡하고 강하게 와 닿았다. 무릎을 탁 꿇고 앉은뱅이를 안고 울면서 간절히 기도해 주었다.
그 다음 주간 강진읍 에서 집회를 인도할 때였다. 수요일 날 낮 공부 시간이었는데 출입구 문이 열리면서 송학의 천씨가 신발장에 신발을 넣고 들어오는 것이었다. 그래서 송학의 천 선생이 아니냐고 물었더니 그는“맞습니다. 앉은뱅이 였다가 지금은 걷습니다”라고 말하며 걸어 들어오는 것이었다. 이에 온 교우들이 그를 향해서 뜨거운 박수를 쳐주었다.
영주읍 제일장로교회에서 집회할 때의 일이다. 나는 장로님 댁에 숙소를 정하고 있었는데, 저녁집회를 다 마쳤을 때에 수레에 죽은 시체를 싣고 찾아온 분이 있었다. 집사님과 전도사님 두 분이 다 죽어가는 환자를 수레에 싣고 오는데 거의 도착했을 즈음에 숨을 거두었다는 것이다. 그래도 목사님 기도는 받고 가겠다고 하여 데리고 온 것이다. 수레에 시체를 뉘어 놓았다.
땀에 젖은 옷을 갈아입고 뛰어나가 보니 그는 이미 몸도 싸늘하였고 눈도 감겨져 있었다. 풍기라고 하는 것 같았는데 꽤 먼 거리에서 환자를 데리고 온 것 같았다. 이미와 가슴에 손을 대고 “죽은 나사로를 살리시던 주님, 허물 많은 종을 믿고 이 먼 곳까지 야심한 시간에 찾아왔는데 하나님 살려 주세요. 살려 주세요” 하고 계속 살려달라고 하는 기도를 몇 번이나 강조하는데 조그맣게 “아멘” 하는 소리가 들렸다.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라고 마치니 그 환자가 “아멘” 하는 것이었다. 사모하면 죽은 사람도 살리는데 하나님의 권능이 무엇을 못하리요.
그때에는 일 년에 30회 가까이 대구 시내 집회를 갔다. 성광교회의 집회 때 있었던 일이다. 입추의 여지없이 교회는 초만원을 이루었고 교회 바깥 뜰까지 사람들도 뒤덮였다.
하나님 앞에 자기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이 자기 집에 있으면 그것이 축복의 통로에 장애가 될 수 있다. 주인을 찾아줄 수 없는 것이거든 다 강단 아래 쌓아두라고 선포하였다.
그 이튿날부터 강단에는 재봉틀과 라디오, 시계, 양은솥, 별의별 것들이 다 올라와서 강단에 가득하고, 은혜에 감사한 사람들은 가락지를 뽑아 바쳐서 강단 위 예물함에는 시계와 가락지가 차고 넘칠 정도였다.
목요일 저녁 집회가 절정에 이르러 기도실로 들어가는데 기도실에는 사람이 콩나물 시루처럼 빽빽했다. 기도실 중간 정도 헤치고 들어가는데 누군가가 내 옷을 붙들고 놓지 않는 것이다. 사회자 목사님이 기도실 쪽을 바라보며 강사님이 들어오시게 비키라고 소리쳤지만 나는 들어갈 수가 없었다. 누군가 옷을 붙들고 놔 주지를 않는 것이었다. 그래서 억지로 목사님이 밀고 당기고 하여 끌어 올렸다. 그 집회는 대성황리에 마쳤다.
그 다음 주간은 대구 영락교회 집회였다. 화요일 날 저녁 집회를 마치고 도인 호텔 숙소에서 막 잠이 들려고 하는데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누구냐고 했더니 여자의 음성이 들려 왔다. 왜 그러느냐고 했더니 만나야 되겠다는 것이다. 만나는 것도 때가 있지 호텔까지 와서 밤중에 만나느냐고 하며 내일 만나자고 거절했더니 목사님 얼굴 한번 보고 가겠다는 것이었다.
옆방 사람도 있고 긴 시간이 걸려서 안 되겠다 싶어서 문을 열어 줬더니 침대 밑에 무릎을 꿇고 앉아서 얼마나 오래 기도를 하는지 침대에 앉아서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던 나는 불쾌하기 그지없었지만 기도하는 모습을 보고 뭐라 할 수 없어서 기도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기도가 끝나자 나를 보면서 방바닥 열손가락을 대고 피아노를 치듯 손가락을 움직이며 나를 보고 있는 것이다.
나는 침대에 앉았다가 벌떡 일어나면서 “사단아 물러가라” 했더니 그 젊은 여인이 “제가 사단인 줄 압니까? 하는 것이다 내가 “사단이 아니면 이 밤중에 그게 뭐하는 짓이냐!” 하자 그 여인은 지난 주간 성광교회에서 집회할 때에 기도실에서 옷을 잡고 늘어진 사람이 누군 줄 아십니까? 제가 옷을 잡고 늘어진 바로 그 사람입니다”라고 했다. 무엇 때문에 내 옷을 잡고 못 들어가게 막았느냐고 물었더니 이렇게 대답하였다.
“대구는 유독 날씨가 추운데, 공동수도에 물 길러 가서 물을 길어 가지고 내려오다 그만 빙판에서 넘어져 손목이 부러지고 말았습니다. 뼈 맞추는 사람이 잘 맞추지 못해 침도 맞았지만 다 오그라들고, 목사님 안수받기를 원했지만 강사님을 만날 시간이 주어지지 않아서 기도실에서 가다리고 있다가 제 오그라진 손을 목사님의 옷자락에 비빈 것입니다. 내일은 큰집에 가야 할 일이 있어서 이 늦은 시간에 목사님에게 이 나은 손을 보여드리려고 찾아온 것입니다.” 그러면서 다시 피아노를 치는 흉내를 내면서 나에게 연신 감사하다는 것이었다.
그때 나는 벌떡 일어나서 옷장에 있는 내 옷을 꺼내서 옷을 들이대며 “그것은 당신의 믿음이 당신을 치료한 것이지 이 옷에는 아무것도 붙은 게 없소. 왜냐하면 매주일 한 번씩 세탁소에 보내는데 세탁소 일 하는 사람이 옷 잡고 회개했다는 말은 못 들었소” 하고는 기도해서 보냈다.
대구 동광교회에서 있었던 일이다. 할렐루야를 자주 부르던 이인규 목사님이 시무하시던 때였다. 교회 건물 뒤 전도사님이 사용하던 방을 수리해서 강사가 쓰기로 하고, 그 옆 에는 또 사찰집사가 살고 있었다. 그런데 나이 많은 권사님들이 집회 전에 일찍 와서 사찰집사 부인을 볶아대는 것이었다.
“마당에 있는 개똥을 왜 안 치우느냐! 화장실이 왜 이렇게 더럽냐, 골목에 병 깨진 것들이 널려 있는데 아이들이 다치지 않겠느냐.”
넓은 교회 주변에 뭐가 있는 것마다 시시콜콜 다 불러서 시키고 야단을 치는 것이었다. 전 교우들이 다 은혜를 받아서 날아가는 것 같은데 사찰집사 부인만 얼굴이 거무스름하고 입이 나와서 다니는 모습이 참 민망하였다.
집회를 마치고 토요일 새벽에 서울로 오려고 역으로 출발하려는데 어떤 권사 한 분이 오더니 “강사님 강사님, 큰일 났어요. 사찰집사 부인이 귀신들렸어요. 옷을 벗고 머리를 풀고 뛰어다녀요”라고 소리쳤다.
그래서 사찰집사 부인을 방 가운데 놓고 목사님, 전도사님, 권사님과 더불어 둘러앉아서 “우리들의 싸울 것은 육체 아니요”라고 박수를 치며 뜨겁게 찬송을 부른 후 그 여인을 향해 외쳤다.
“사단아, 네가 눈이 멀어서 예수의 피가 있는 이 딸 속에 들어왔다. 내가 이제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나가거라. 나가거라.”
손가락으로 얼굴을 찌를 듯 나가라고 소리를 지르며 공격하였다. 그러자 문 옆에서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던 강아지가 팔딱팔딱 깨갱거리고 뛰더니 파랗게 올라오는 방문 옆 연탄불에 머리를 콕 쳐 박고 바싹 타죽는 것이었다. 바로 그 순 간에 사찰집사 부인이 헝클어진 머리를 가다듬고 머리를 숙이며 “강사님, 죄송해요” 하는 것이었다.
나이 많은 권사들이 쓰레받기와 빗자루를 들고 같이 치워 주었다면, 사찰집사 부인에 미운 마음이 생기지 않았을 테고 그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분한 마음, 미워하는 마음,섭섭한 마음, 지나친 염려와 걱정이 사단의 올무가 되기 쉬운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