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해기념관

하늘비전교회 원로 오관석 목사 소개합니다.

성도 여러분 반갑습니다
성도 여러분 반갑습니다

오관석 목사 태성침례교회   시절

공주군 정안면 인풍리에 있는 태성침례교회는 인풍마을에서 좀 떨어진 태성침례 교회라고 이름 하였다. 그 교회에 내가 부임한 때는 1960년도 늦은 봄이었다. 첫 주일 강단에 서서 60년된 교회의 교인들을 대충 세어보니 60명가량 되었다. 그러고 보면 일년에  한 사람씩 전도 되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담임목사인 나는 점점 마음이 무거워졌다.

 안수집사라는 나이 많은 남자 분들은 술, 담배를 다 하고, 젊은 집사들은 이장이니 새마을 사업이니해서 주일성수 할 줄을 모르고, 장날이면 주일이라는 생각을 잊어 버리고 모두 장으로 나가기가 바빴다. 그런 교인들을 강단에서 교회 창문으로 넘겨다 보는 설교자는 힘이 다 빠져 설교 할 기력마저 잃게 되었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심방을 가다보면 논둑에서 둘러앉아 새참을 들다가 반갑게 “전도사님” 하며 “목마르실 텐데 막걸리 한 잔 드시지요” 하는 것이다.

십일조는 생각조차 안 할 뿐 아니라 그들은 앉기만 하면 옛날에 기독교 선배 전도인들은 짚신 걸쳐메고 도시락도 없이 산 넘고 강 건너서 고생하며 전도했다면서 전도사는 고생을 많이 해야 은혜 있는 목회자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안수집사님들은 나에게 말하기를, “성령이여 강림하사 나를 감화합소서” 하는 찬양은 우리 교회에서 안 부른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성령이 벌써 우리에게 오셨는데 무슨 성령이 또 강림하느냐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노력으로 구원받는 것도 아닌데 새벽기도회는 왜 하느냐고 주장한다.

그러다 보니 점점 예배에 힘이 없어지고 기도가 없고 찬송이 약하고 헌금이 없는 교회가 되었다. 교회 성장은 날로 퇴보 하고 60여 명 모이던 교인이 일 년이 다 지나기도 전에 30여 명밖에 남지 않았다.

나는 토요일이면 우편물 배달자처럼 집집마다 찾아가서 “다 평안하십니까? 오전도사 왔습니다. 내일이 주일입니다. 내일 아침에 뵙겠습니다.” 라고 문안 인사를 드리고 기다렸지만 온다는 사람들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차츰 나는 한계를 느꼈다.

초등학교 교사 일을 해도, 은행 직원들을 해도, 사관학교에 가서 군인 장교가 되었어도 그것보다는 천 배나 나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가족의 반대를 무릅쓰고 신학을 열정 하나로 강행한 나 자신을 비웃는 거 같았다.

김만태 집사님의 모친 노 집사님을 비롯한 몇 여 집사님 들이 나의 고민하는 모습을 눈치 채신 것 같았다. 하루는 미숫가루와 담요, 내복, 교통비를 가지고 와서 산 기도를 가라는 것이었다. 그때는 한국에 기도원이라고 하는 곳은 두서너 군데 밖에 없었던 때이다.

내 생애에 처음으로 용문산을 찾게 되었다. 추풍령역 에서 내려, 좁은 산길로 이어진 길을 올라가는 군중들 사이에 끼어서 고개를 넘고 또 넘었다. 어렵고 힘든 고개를 오를 때마다 돌 바위에 ‘인내’ 라고 쓴 글자를 보기도 하고, 모퉁이를 돌아 갈 때 ‘믿음’ 이라는 글자를 보기도 하고,  펑퍼짐한 돌 바위에 짐을 내려놓고 쉬는 자리에는 ‘사랑’ 이라는 글자가 쓰여 있기도 했다. 참 멀고 험하고 힘든 고개들을 넘어서 드디어 용문산 기도원 입구에 들어섰다. 이 깊은 산간에도 큰 도시를 방불 할 만큼 갖은 음식과 과일과 필수품을 파는 상가들이 있었고, 그곳에 주둔하고 사는 민가들도 꽤 있었다.

짐을 풀어 놓고 예배 처소에 나가 보니, 문전에서 강단이 가물가물하게 보이는 큰 성전이었고 또한 바닥에는 가마니가 깔려 있고, 강단 아래편에는 여러 가지 악기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첫날 저녁 집회가 시작되자 입추의 여지없이 모여드는 성도의 무리가 마치 광야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과도 같았다.

나운몽이라고 하는 장로님은 작은 키에 깐깐한 음성으로 대중을 휘어잡는 불붙는 기도를 시작했다.

깊은 산중의 아직 완공되지 않은 성전에서 수천 명의 성도들에게 폭포수같이 쏟아내며 불을 토하듯 증거 하는 말씀은, 온 군중들에게 사도행전적 회개와 역사가 일어나게 하였고, 통성기도가 끝난 다음에 열정적인 찬양을 통해서 불을 붙이는 밴드부의 악기 소리와 열광적인 군중의 찬양이 어우러져서 모든 성도들은 다 일어나서 둥실둥실 춤을 추었다.

그러나 나는 얼마나 깊은 슬럼프에 빠져 있었던지 박수를 치고 싶은 마음이나, 열광적인 군중들과 함께 일어나 어울릴 생각이 전혀 없었다.

마침 나 장로님은 뒷산은 남자들이 올라가 기도하는 장소이고, 개울 건너 앞산은 여자들이 기도하는 장소라고 가르쳐 주면서, 몸을 움직일 수 있는 사람들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기도하러 가라고 광고를 하셨다. 나도 성경, 찬송가를 깔방석에 싸서 끼고 산상봉까지 올라갔다. 유난히도 밝은 보름달 빛 아래 산천을 뒤흔드는 기도 소리에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 같았다. 놀랍게도 그 높은 산봉우리에서 백발 할아버지가 한쪽 신발이 벗겨진 채 몸부림을 치면서 눈물 콧물이 범벅이 되어 부르짖고 있었다.

다시 산비탈로 내려오면서 좀 한적한 곳을 찾으려고 이곳  저곳을 살피는데, 고등학생 같아 보이는 젊은이 하나가 참나무를 붙들고 얼마나 애절하게 기도하는지 완전히 기도에 사로잡힌 모습이었다.

나는 그 아래로 조금 더 내려오다가 바위 언덕에 깔방석을 깔고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둥근 달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앉아서 천지를 뒤흔드는 기도 소리를 듣고 있노라니, 나 자신이 너무 기도와 거리가 멀어진 사람인 것을 새삼 느꼈다.

그러면서도 이상하게 그 기도 속에 들어가는 일에는 거부감이 생겼다.

좀 기도를 해보려고 무릎을 꿇고 자세를 가다듬으려는 순간에 바로 바위 밑에서 손을 들고 흐느껴 우는 어떤 분을 보게 되었다. 아마 목사님인 것 같았다. 그는 이러한 내용으로 기도하고 있었다.

“하나님, 나는 삯꾼 목자에요. 하나님이 맡기신 양무리보다 돈을 더 사랑하다가 양무리는 다 흩어지고 텅 비어 있는 예배당만 안고 있는 이 못난 목사를 용서해 주시옵소서” 하면서 흐느껴 우는데, 마치 나를 대신하여 어머니나 형님이 기도해 주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아무리 엎드려서 기도를 하려 해도 머리에는 잡념만 가득하고, 마음은 허탈감으로 꽉 차 있고, 입은 무겁게 닫혀서 열리지 않아 억지로 중언부언하다가 기도를 끝마쳤다.

마음이 터질 것같이 답답한 심정으로 깔방석에 성경을 싸안고, 여기  저기에서 수많은 사람이 기도하는 모습을 보면서 성전 있는 곳까지 내려왔다.

개울을 건너서 여자들이 기도하는 곳이라고 광고하던 그 산으로 개울 따라 좀 올라가다 보니, 어떤 할머니가 돌 바위에 앉아서 달빛을 바라보며 찬양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마치 천사처럼 금방이라도 하늘로 날아올라갈 것 같았다.

물끄러미 넋을 놓고 바라보고 서 있는 내 마음 속에 ‘바로 저것이야. 철두철미하게 회개하고 속죄함을 받아 육의 사람이 영의 사람으로 바뀌면 저런 모습으로 변할 수 있다, 바로 저것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앞의 골짜기 나무 밑에서 어느 처녀 하나가 얼마나 우렁차게 여호와 하나님을 찾는지, 어찌 여자의 입에서 저렇게 우렁차고 큰 소리가 터져 나올 수 있겠는가 싶어서 좀 가까이 가보려고 했더니 팔에 완장을 찬 순찰원 한 사람이 나에게 손짓하며 저 앞산으로 올라가라고 것이었다.

나는 좀 올라가서 나무를 붙들고 깔방석을 놓고 무릎을 꿇고 성경 찬송가를 앞에 놓고 기도를 시작했다. 그 여자 청년이 기도하듯 힘을 다해서 여호와 하나님을 불렀다. 세 번째 여호와 하나님을 부르고 나니 배 힘이 없어져서 더 부를 기력도 없고 지쳐 나무 밑에서 깊이 잠이 들고 말았다. 새벽기도 종소리에 일어나 나가 성전에 앉으니 내 영이 얼마나 병들었고 또 무기력한가 하는 생각과 함께 하나님과 천 리나 멀어진 나 자신이 안개속에 희미하고 어렴풋이 보였다. 새벽기도회를 마치고 낮 공부에 들어갔다. 머리에 뜨거운 불, 가슴이 뜨거워지는 불, 온몸을 바싹 태우는 성령의 불을 받으라고 나 장로님은 외치기 시작했다.

그 집회는 열흘간이었는데 5일이 지나도 갈수록 마음이 냉랭해지고, 거기에 적응도 되지 않고 마음에 받아들여지지도 않아서 결국은 하산하기로 결정했다.

같이 입산했던 여러 분들이 끝까지 참석하라고 만류했지만 나는 닷새 만에 하산하고야 말았다. 내려오면서 보니 그때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산으로 올라오고 있었는데 그런 사람들마다 내려가는 나를 바라보고 “선생님은 왜 내려가십니까? 라고 묻는 것이었다. 나는 “은혜를 다 받았지요” 라고 대답하면서 하산하여 교회로 왔다. 그런데도 주일날 강단에서 말씀을 증거 하면서 교인들의 반응과 메시지를 전달하는 내가 느끼는 것은 예전보다 한결 은혜스러워진  것 같았다. 집에 도착해서 보니 내 책상에 초청장 한 장이 놓여 있었다. 계룡산 양정기도 원에서 교역자 산상수련회를 하는데 참석해 달라는 공문이었다. 초청장을 들고 읽어 내려가다가 ‘한번 더 가보자’ 하는 생각으로 다시 그 산으로 향하였다.

양정기도원은 계룡산 입구 산언덕에 세워진 조그마한 기도원이었다. 첫날 저녁에 참석해 보니 참석한 사람들은 대부분 목사님과 사모님이었고 약 120명가량 되었다. 강사는 두 사람으로 정영문 목사와 김형태 선생이었다. 두 강사는 너무도 대조적이었다. 한사람은 설교가 신학적이며 철학적이었고, 한 사람은 성경 본문을 읽고 액면 그대로 믿느냐는 질문으로 시작해서 믿음의 확신을 주는 설교였다.

그 집회에서도 역시 두 강사에게 별로 은혜를 받지 못했다. 한 강사는 자기 자랑이 많은 것 같았고, 한 강사는 말씀이 너무 없는 것 같아서 앉아서 속으로 비판만 하며 하루 이틀을 보냈다. 그런데도 참석한 다른 교역자들은 두 손을 번쩍번쩍 들며 “아멘, 아멘”으로 화답을 하고, 시간마다 드리는 감사의 예물 속에 시계, 가락지 혹은 팔찌를 드려가며 눈물로 참회하고 깊은 은혜를 받는 것이었다.

그곳에서 우리 교단의 교역자 중에 일찍 방언을 받은 전도사님 한 분을 만났는데, 나를 보자 대뜸 “오 전도사님, 이 산에 왔으니 이번 기회에 방언을 받으시오” 하는 것이었다. 그 전도사님에게 나는 면박을 주듯 20년이나 공부를 해가지고 몸이나 흔들고 룰루룰루 따따따따 하고 앉아 있으란 말이냐? 내 몫까지 너나 받아라!” 하면서 앉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날이 목요일 저녁이었다. 모든 사람들은 날아갈 것같이 얼굴에 빛이 나고 기쁨과 감격이 넘쳤다. 유독 나 한 사람만이 버림받은 사람처럼 어깨는 늘어지고 발은 천근이나 되고 마음은 터질 것같이 답답하고 머릿속에는 수많은 갈등과 잡념들로 가득 찼다.

이제 나는 더 참을 수 없을 만큼 혀가 타들어가는 것 같은 갈증으로 초조하고 불안하기만 하였다. 마치 예수를 팔아넘긴 가룟 유다가 은 삼십 냥을 대제사장의 뜰에 던지고 나무에 스스로 목을 매는 처지와 같았다. 산기가 임박한 여인이 아기를 낳으려고 고통 하는 순간처럼 육의 사람이 영의 사람으로 새로 태어나는 과정도 이와 같을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나는 그날 밤 10여 명의 목회자들을 뒷산으로 초청해서 무릎을 꿇고 집중 안수를 받기로 결심하고, 가장 성령충만한 목사님, 전도사님들 10여 명을 초청했다. 돌 바위 위에 무릎을 꿇고 내 머리에 손을 얹고 은혜를 받게 해 달라고 진심으로 간청하고, 하나님께 무릎 꿇어 이렇게 기도했다.

“하나님, 모세에게는 지팡이를 주어서 그 지팡이로 일하게 하셨고, 아론에게는 싹난 지팡이를 보이면서 양털을 손으로 더듬어 가며 확신을 주어서 일하게 하셨는데 나는 아무 확신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신 증거를 이 시간에 나에게 주옵소서.”

그렇게 기도하는 순간에 10여 명의 목사님, 전도사님들이 내 머리와 등과 어깨에 손을 얹어 방언기도로 안수를 시작했다. 그 순간, 하늘로부터 정말 뜨거운 불이 쏟아졌다. “악-” 소리를 지르면서 “앗, 뜨거워” 하는 순간에 혀가 빠져 나와 방언을 하게 되고, 온몸이 부들부들 떨리고 바위 위에 무릎을 꿇고 그 자리에서 펄펄 뛰었다. 이슬비가 조금씩 내리고 있었는데 내가 봐도 내 혀가 점점 길게 빠져나오는 것 같았다.

소리를 지르면서 손을 들고 휘두르기 시작하니 안수하던 사람들이 내 혀를 바라보며 “이상하다, 혀가 저렇게 길게 나올 수 있어? 참 이상하다”라고 말했다. 열 사람들이 다 서서 길게 나온 혀가 입 밖에서  빙빙 돌고 룰루룰루 소리를 내며 부들부들 떨고 있는 나의 모습을 모두 다 이상하게 쳐다보며 구경하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그때 깨달았다. 입산했을 때 어느 전도사님이 방언을 받으라고 하는 권면에 “그 따위 것 너나 받아라” 하고 망신을 준 일이 생각났다. 나는 하나님의 종인데, 종은 주인이 주는 대로 받는 것인데, 받느니 안 받느니 거만을 떠는 나에게 방언을 주시되 혀가 그렇게 빠져나와서 망신을 받아가며 방언을 받도록 하시는 거라고 생각되었다.

그 순간에 몸을 가눌 수 없을 만큼 온몸이 강하게 떨리고 불같이 뜨거워지면서 이내 걷잡지 못하고 진땅에서 뒹굴기 시작했다. 얼마 동안 이런 극한 기도 시간이 지나자 감사한 마음이 넘쳐 흘렀다. 그리고 나서 호주머니에 남아 있는 돈 몇 푼이라도 감사로 표현하려고 보니 너무나 작고 무성의한 것 같았다. 다 찾아 봐도 나에게는 값나갈 것은 얼마 전에 새로 사온 담요밖에 없었다. 교통비만 남기고 남은 돈 전체와 담요를 묶어서 강단에 감사예물로 드리고 토요일 새벽 예배를 마친 다음에 하산하여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토요일 하룻밤을 지새웠다. 아마도 내 평생에 처음 온전한 철야를 한 것 같다.

그 이튿날 주일 낮에 ‘하나님은 살아계시다’ 라는 제목으로 설교하는데, 나도 모르게 말씀에 힘이 있고 마음에 확신이 넘치며 불이 되어서 튀어나가는 것이었다. 그 순간 예배당은 한 마디로 성령의 도가니였다. 앞에 앉은 사람들부터 뒤에 있는 모든 교우님에게 이르기까지 “악악-” 소리를 지르며 가슴을 치고 나 뒹구는가 하면, 창 밖으로 담배 쌈지와 담뱃대를 무릎으로 꺾어 던지고, 또는 설설 기어다니거나 울부짖으며 자기 가슴을 마구 쥐어뜯는 것이었다.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우리가 어찌할꼬” 참회하던 오순절의 역사가 아마도 그 보다 더 크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섬기던 태성교회는 너무 경건하고 조용하게 예배를 드리는 보수적인 교회였기에 강단에 탁종도 없었다. 이런 교회가 갑자기 주일 낮 예배에 이런 수라장이 되고 보니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래서 절제해 달라고 강대상을 두드렸더니, 남은 사람들마저 엎어지고 넘어지고 뒹굴고 기어 다니는데 그 광경을 무어라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세계적인 부흥사 오랄 로브스는 이러한 광경을 ‘하나님을 만나는 과정’ 이라 했고 또한 ‘거룩한 무질서’ 라고 했다. 거의 한두 시간이 지난 후 좀 조용하게 되었을 때 나는 그들에게 선포했다.

“오늘 밤부터 우리 교회는 부흥회가 시작되고 부흥강사는 오관석 전도사입니다. 부흥회는 새벽, 낮, 밤, 하루 세 번씩 시간을 갖되 끝나는 날짜는 하나님이 그만하라고 하실 때까지 입니다.”

그리고 그날 밤부터 교회 종을 울려 하루에 세 번씩 집회를 하였는데, 약 3개월 동안 지속되었다. 그 동안 30여 명까지 줄었던 교인은 300여 명의 숫자로 크게 늘었고, 전 교인들이 방언, 예언, 통변 등 성경에 있는 모든 은사를 받았을 뿐 아니라 전 교우가 철저한 주일성수와 십일조 생활과 순교적인 각오로 새벽기도 드리는 일을 할 만큼 성도의 의무에 주력하는 교인으로 탈바꿈하였다. 과연 어제의 태성교회는 오늘 태성교회가 아니었다.

그 기간 동안 희한한 일들이 많았다.

밤낮으로 교회 와서 집회 참석하랴, 기도하랴 하며 교회에서 살다시피 하는 자기 아내를 찾아온 어느 남편은 자기 아내의 머리채를 잡고 끌고 나가다가 그 자리에서 선 채로 방언을 하고 진동을 하여 예수를 영접하였다. 또한 술만 먹으면 태성교회 종 떼어가는 사람에게 쌀두 가마니 주겠다’ 고 소리소리 지르는 영감은 꿈속에서 마귀에게 쫓겨 다니다가 교회로 숨으러 뛰어 들어오자 마귀가 따라오지 못하는 꿈을 꾸고 교회에 출석하기도 하였다.

새벽에 물 길러 가던 동네 아낙네들은 300여 명이 모여 새벽기도 하는 태성교회 지붕에서 불이 활활 모습을 보고 교회에 불났다고 소리소리 지르며 뛰어와 보니 교회는 멀쩡하게 그대로 있고, 멀리서 보면 여전히 교회 지붕에서 불이 활활 타오르는 모습을 한두 사람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이 보았다고 했다.

술이 머리 끝까지 차서 교회에 온 동네 젊은이도 있었다.

“최 선생님, 왜 이렇게 술을 잡숫고 교회에 오셨나요?"

그는 “목사님, 죄인을 용서하여 주시오. 다른 사람은 다 천국에 가는데 나만 지옥으로 떨어지는 것 같아서 교회를 나오고 싶었지만 지난날 내가 지은 죄가 너무 많아서 맨 정신으로 는 나올 수가 없었습니다” 하였다. 교회로 데리고 들어가서 붙들고 기도해 주었더니 그날부터 충성스러운 교인이 되었다. 그때 나는 술을 먹고 서라도 교회를 찾아오는 사람은 잘 영접해야 된다는 사실을 다시 알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태성교회를 부흥시키는 몇 가지 방법이 있었다. 완고한 사람에게는 꿈으로 역사했다. 계속 고정된 시간에 누가 대문을 두드리는 것 같아 깨보면 새벽예배 나갈 시간이라는 것이다. 이런 일이 너무 여러 번 계속되니 하나님이 자기를 부르시는 것 같아 새벽 시간부터 예수를 믿기 시작한 이들도 있었다. 어떤 사람은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을 보는 꿈이 밤마다 며칠씩 계속되어 예수를 믿게 된 이도 있고 , 생전교회를 가보지 않은 자기네 집에 와서 담임전도사인 내가 예배를 드리는 꿈을 꾸고 교회에 나온 이도 있었다.

어떤 이들에게는 병으로 하나님이 치셔서 교회 와서 기도 받고 그 자리에서 나아서 예수를 영접하게 된 분들도 있었다. 심지어는 소나 돼지나 개 까지도 몹쓸 병이 들어 어려운 처지에서 기도를 받고 깨끗하여져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발견하고 교회에 출석한 사람도 있었다.

교회를 핍박하다가 기적을 보고 예수를 믿게 된 사람도 여러 사람이 있었다.

아내를 찾으러 왔다가 혹은 교회 종소리가 싫어서 달려 나와 예배 자리 뒤에 앉아 있다가 쓰러져 참회하고 예수 믿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교회에 불이나 났으면 좋겠다고 저주하다가 교회지붕에 불 붙은 것을 보고 잘됐다고 뛰어 내려와 보니 불은 사라지고 교회 안에서 기도 소리만 들리기에 열고 들어와 기도하는 광경을 보다가 방언의 은사를 받은 사람도 있었다.


농사가 흉년이 들든지, 사업이 실패하든지, 자녀들이 어그러진 길로 빠져 들어가든지, 이런 일 저런 일로 교회를 찾게 된 사람도 있었다. 교인들의 철두철미한 회개로 마음의 성전이 재건되니, 차령산 기슭 깊은 산간벽지에 10리 안팎 여러 동네를 모두 동원해도 300여명밖에 되지않는 작은 마을에서, 하나님의 뜨거운 사랑을 입고 그들이 온전히 명밖에 되지 않는 작은 마을에서, 하나남의 뜨거운 사랑을 입고 그들이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기 위해 타작 마당에서 수레에 싣고 교회마당에 들어왔다. 소, 돼지, 모든 짐승과 밤, 대추, 과일에 이르기까지 첫 열매와 십일조 감사를 드리고 물질의 복을 받아 농촌에서 그 큰 교회를 짓게 되었으니, 이 어찌 하나님의 도움이 아니겠는가.


교회 특징으로는 첫째, 밤낮으로 기도소리가 끊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기도 특공대원들 약15명가량이 교회에서 매일 철야 기도를 하자 충남 일대의 정신병자, 마귀환자, 불치병 등등으로 오는 사람들마다 고침을 받고 감격하여 돌아가는 역사가 일어나 예루살렘 교회 같은 어머니 교회의 사명을 감당하게 된 것이다.


둘째, 첫 열매와 십일조와 감사가 창고에 가득 쌓였다.


셋째, 새벽 시간, 낮 시간, 밤 시간에 똑같이 300여 명의 교우들이 회집하였다.


이런 놀라운 부흥회 결과가 나타나자 여기저기서 오관석 전도사를 부흥강사로 초청하게 되었다.

담임목사 : 장충만 목사

주소 : 서울특별시 송파구 백제고분로 12길 30 (잠실동 302-5)
선교국 : 02-241-2355 | 설악수양관 : 031-584-957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