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비전교회 원로 오관석 목사 소개합니다.
오관석 목사 김천침례교회 시절
그 당시 전국에 침례교회는 150여개 남짓했다. 그래도 김천침례교회는 비교적 큰 교회에 속했다. 김천 시내 중앙지역에 있는 교회로 바로 평화시장 옆 높은 언덕에 우뚝하게 보이는 교회였다. 그 교회 전임자가 떠나고 후임자를 찾고 있을 때 같은 반에서 공부하는 도병기라는 학생이 자기 교회 교역자로 나를 추천한다는 것이었다. 그것을 계기로 그 교회에서 첫 설교를 하게 되었다. 첫 설교를 들은 교인들이 모여 앉아서 나를 자기 교회에 담임 전도사로 초청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사무회가 열렸다. 한 주간 후에 등기 한 장이 날아왔는데 담임 교역자 초청서였다.
그 교회에 부임하여 6~7개월이 지났을 때이다. 침례교단 안에 총회장을 비롯한 총회 임원들과 선교사 간에 갈등이 생겨서 두 파로 나뉘어 있었다. 총회 임원을 중심으로 한 파와 선교사를 중심으로 한 개척교회와 젊은 목회자들이 모이는 또 다른 파가 있었다.
양편이 임시 총회를 소집하였는데, 총회 임원을 중심으로 한 이들은 포항침례교회에서 모이고 선교사를 중심으로 한 신진 젊은이들은 대전 대흥동 침례교회에서 모였다. 역사적으로 하나를 자랑하던 침례교단의 전통에 드디어 포항과 대전 두 총회로 갈라지는 불행한 일이 일어난 것이다.
그때에 진흥원, 신학교, 침례병원 등의 기관들은 선교사들이 주동하는 대전총회에 속하였다.
신학교를 졸업하는 학생들에게 3~4년씩 선교 자금을 개척자금으로 주고, 전세로 집을 얻고 땅 사는 일을 보조하는 대전총회에 속한 교회들은 많이 성장하였다.
그러면서도 신학교에서 3년 혹은 6년 한솥밥을 먹고, 한 방에서 잠을 자고, 한 강의실에서 배웠던 동문, 동기가 반목하고 왕래가 끊어지고 대화 없이 지내는 일이 계속되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피차의 마음속에 자주 일었다.
이러한 여건 속에 목회자를 따라서, 교인의 성분을 따라서 대전에 혹은 포항에 교회가 따라가기도 하고 혹은 양분되기도 했다. 침례교단의 이런 현실을 목도한 나는 명확하게 결단할 때가 왔다는 것을 느꼈다.
김천침례교회 전임자 이덕근 목사님은 포항파의 주역을 담당한 인물 중의 한 분이었다.
내가 몸담아 담임한 교회의 수석 집사님은 이덕근 목사님의 친동생이었고 그 교회는 이 목사님이 개척하여 성장시킨 교회였다. 나는 대전파에 속하여 있으니 자칫하면 한 교회가 둘로 갈라져야 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감지하고, 그 교회가 상처 받는 일이 없도록 나 스스로 조용히 사임하는 것을 선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