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해기념관

하늘비전교회 원로 오관석 목사 소개합니다.

성도 여러분 반갑습니다
성도 여러분 반갑습니다

오관석 목사 청년기

청주상업고등학교를 비롯해서 청주 시내에 있던 여자상업학교, 대성 남.여 중학교, 청주 대학교가 같은 재단에 속한다. 그래서 청주상업고등학교에서 반별 3등 안에 드는,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은 교장 선생님의 추전을 받으면 무시험으로 청주대학교에 들어갈 수 있었다.


청주상업고등학교에서 전교 20등 안에 드는 학생 중에 7~8명은 다른 대학에 지망하고, 매년 10여 명 이상이 무시험으로 청주대학교에 합격하였다. 나는 상업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수가 되기보다는 목사가 되어야겠다는 소신이 있었기 때문에, 합격이 어려우리라 예측하면서도 서울대 상과를 지망하여 시험을 보았다.  마지막 면접하는 날이 대전침례신학대학 입학시험 날이었다. 면접을 포기하고 침례신학대학 시험을 치르고 합격 통지서를 부모님께 전했지만 별로 달가워하시지 않았다. 오히려 “청주대학 상과를 무시험으로 갈 수 있는데 왜 서울까지 가서 불합격을하고 신학교에 입학한단 말이냐?

무엇을 연구하지 못해서 귀신을 연구하는 신학교에 가느냐?" 하며 대노하는 가족뿐 아 무도 잘했다고 칭찬하는 사람이 없었다.


나는 선교사님들께 들은 대로 이 침례신학교는 아시아 최고 수준의 종합대학이 되고 세계적 차원의 신학교로 성장하여 예과 3년, 정과 3년간의 신학과정을 마치면 그 대학의 교수가 되고 세계적 인물이 된다고 가족들을 설득했지만 그다지 신통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러나 학교는 명월관 술집 터에 술 먹던 방만 수십 칸  있는 허술한 건물에 신학 교를 개교하였다. 예과생 52명, 별과생 50여 명, 전수과생 50여 명, 도합 150여 명의 학생으로 침례신학교는 출범했다. 예과생들은 고등학교를 갓 졸업하고 입학한 학생들이고, 별과생들은 사회생활을 오래 하다가 소명을 받아서 대다수 6년제 학교를 마친 나이 많은 분들이었다. 전수과생은 중학교 졸업 또는 고등 학교 중퇴를 한 분들로, 학력은 조금 부족하지만 뜨거운 소명을 받고 배우고자 하는 열정이 뜨거운 분들이 지망하였다.


예과생들은 세계적 대학을 만든다고 하는 총회와 선교사님들의 말을 듣고 전국 침례교회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 중에 우수한 성적의 학생들이 대거 몰려왔다. 그러나 대다수 교수진이 선교사님들로 이루어졌으므로, 명문 대학이나 다른 대학에서 명 강의를 하는 훌륭한 교수님을 기대했던 학생들은 적지 않은 실망을 하였다.

예과 3년을 지나는 동안에 52명의 입학생 중에 절반 이상이 낙오하였다. 침침한 학교 건물과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교수진은, 조급한 젊은 학도들에게 참기 어려운 과제였다.


이렇게 예과 3년을 수료하고 정과로 진학하면서, 목동에 말끔한 붉은 벽돌 신학대학 건물을 세우고 이전하게 되었으며, 교수진도 조금 나아지고 학교 분위기도 많이 쇄신되었다.


그러나 신학교에 처음 입학하면서 기대했던 것들, 즉 예과 3년, 정과 3년을 지나면 능숙한 영어를 구사하고, 미국의 일류 학교에 유학을 갈 수 있으며, 전액 장학금을 받고, 한국 최초로 6년 신학이 이루어지는 것만큼 동양 최대의 건물을 짓고, 세계적 석학을 모시고 공부할 것이라는 기대에는 가히 미칠 수 없었다.


그 결과, 한 학기가 끝날 때마다 학생 숫자는 점점 줄어들어서 정과 1회생이 졸업장을 받을 때는 52명의 많은 얼굴들은 다 사라지고 8명만이 침례신학교 제1회 정과 졸업장을 받게 되었다. 그들의 이름을 호명하면 대전 대흥동 교회 담임 안종만 목사, 한국인으로서는 첫 침례신학대학 학장이 된 정진황 목사, 서울중앙교회 담임인 나 오관석을 비롯해서 박영록, 노영식, 황영호, 김용대와 진흥원 원장과 총무로 교단에 공을 세운 노창우 목사가 있다. 이 8명은 길고 먼 좁은 터널을 거쳐서 교단 발전에 일익을 담당한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계속되는 후배 정과생이나 혹은 별과 혹은 전수과, 그 외에도 목회 연수원을 거쳐서 교단의 일을 하는 훌륭한 인재들도 셀 수 없이 많다.


뿐만 아니라 침례교회의 성경 중심의 교리와 말씀이 너무 좋아서, 타 교단에서 교파의 담을 넘어 우리와 손을 잡은 동역자들도 많다. 이들은 침례교단에서 잔뼈가 굵은 목회자 못지않게 교회를 성장시키고 수많은 개척교회를 세우며, 선교의 기치를 높이 들었는데, 이분들의 공로도 참으로 크다고 할 것이다.1973년도에 내가 총회장으로 있을 때만 해도 우리 침례교회는 250교회였다. 그러나 오늘에 와서 2.000 교회가 넘는 대형 교단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던 것은 앞에서 열거했던 수 많은 분들의 노고와 희생이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담임목사 : 장충만 목사

주소 : 서울특별시 송파구 백제고분로 12길 30 (잠실동 302-5)
선교국 : 02-241-2355 | 설악수양관 : 031-584-9575~7